2014년 4월 23일 수요일

화재에 대한 옛 기억...

대학시절 학교 밖에서 지내다가 캠퍼스 생활을 해보자며 기숙사로 들어가 마지막 1년 반을 보냈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정확히 1주일이 된 새벽 3시.. 갑자기 엄청난 소리의 Fire Alarm이 울리더니 누군가 방 문을 두들기며 어서 나오라고 급한 소리로 고함을 쳤다. 다급한 목소리와 귀를 때리는 알람 소리에 정말 불이 났구나 싶어 정신없이 여권을 찾고 자켓을 입은 후 급하게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기숙사 사감 정도 되는 이들이 대피해야 하는 길목길목에 서서 학생들을 인도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약 20분 정도를 떨고 있는데 문득 당연히 있어야할 소방차가 안보였다. 의아한 마음으로 옆에 있던 학생에게 "야, 불났는데 왜 소방차가 왜이리 늦게 와?" 하고 물었더니 이 학생은 화재대피 훈련이라며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런 ㅆㅂ... 새벽 3시에 화재 훈련이라니...

이후로도 이런 화재대피 훈련은 한 학기에 한번씩 있었는데 한번은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 그냥 누워있었지만 알람소리가 너무나도 크고 계속해서 복도를 뛰어다니며 문을 두들기는 사감들로 인해 어쩔수 없이 나가게 되었다.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문화 중 참 고지식하다고 느낀 것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화재훈련도 그렇고 자신의 일이 아니면 손끝 하나 대지 않는 직업문화도 그렇고 툭하면 절차라며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이런 그들의 고지식함은 위기상황에서 빛을 낸다. 화재훈련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새벽에 나를 깨우고 귀찮게 하던 이 훈련이 실제 화재사건이 발생했을 때 큰 힘이 되었다.

실제로 기숙사에 작은 화재가 발생한 일이 있는데 나를 포함해 기숙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빠르고 질서있게 움직여 10분도 안된 시간에 모두 기숙사를 나와 소방관의 화재진압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던 일이 있다.

우리나라는 속칭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없으니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급하면 급할 수록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렇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위기상황에 직면할 때 큰 위험을 드러내게 된다.

세월호의 과적도,, 훈련이 덜 된 항해사도,, 열심히는 했지만 최선의 과정은 보여주지 못한 정부의 대처능력도..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나도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의 어두운 단면의 한 예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