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개인 노트 - 개인 헛소리.
공성과 수성은 다른 성질의 것.
공성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성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이 둘 모두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우리가 잘아는 제갈공명도 공성보단 수성에 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외세 침공의 역사이고, 따라서 수성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 많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침략을 행한 경우는 많지 않기에 공성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을 꼽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연개소문은 공성과 수성 모두에 강했다고 생각한다.
공성과 수성의 능력이 다름은 결국 때에 따라 필요한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경제에도 정치에도 공성과 수성의 때가 있고, 그 때에 따라 필요한 능력이 다르다.
가장 쉬운 예로 애플의 잡스를 꼽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공성에 탁월했지만 수성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창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고 이후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잡스의 사후 애플의 수장이 된 팀쿡은 공성보단 수성에 특별한 능력을 보여줬다. 경영에서 공성의 때는 창업에서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를 뜻한다. 수성의 능력은 창업 후 기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을 때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팀쿡의 수성 능력을 AI라는 변화가 불기 전까지 매우 잘 사용했다. 다만 AI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변화에서 팀국의 공성 능력은 매우 부족하다. 애플은 안정이 아닌 혁신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 아니 사실 이미 늦었다.
공성과 수성의 같은 듯 매우 다르다.
기존의 관성을 깨트리는 것. 이것을 합리성에 기대면 불가능하다. 기존의 관성을 깨트리기 위해선 과감한 도전과 모험이 필요한데, 이는 합리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무모함에 기대는 것이다. 그리고 무모함은 결국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성공을 위해서 여러 번의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집요함도 요구된다. 결국 공성은 무모함과 집요함을 갖춰야 한다. 반면 수성은 합리성과 참을성을 더 필요로 한다. 지키는데 무모함이 앞선다면 매우 큰 확률로 잃게 된다. 수성의 핵심은 잃지 않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무모함의 댓가는 크다. 성공한다면 그 보상은 더 크다. 하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것이 성공에서 운이 절대로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과거 2000년 초반까지 꽤나 운이 따랐다. 기존의 관성을 깨트리는 무모한 인물들이 나타났고, 이들의 모험은 크게 성공했다. 또 이 중 몇 명은 공성과 수성 모두에 능하기도 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매우 큰 복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기업은 삼성과 현대다. 이병철 회장 -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진 삼성과 정주영 회장 - 정몽구 회장으로 이어진 현대는 모두 창업주들의 집요함과 뛰어난 공성 능력으로 창업에 성공했고, 동시에 이들은 수성 능력도 좋아 가업을 크게 확장했다. 보통 재벌 2세는 수성 능력으로 기업을 확장하는 반면 삼성과 현대의 두 아들들은 공성 능력을 갖추어 위기 때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기업을 확장했다. 현대의 현재 회장 정의선씨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LG의 구인회 회장, 대우의 김우중 회장, 한화의 김종희 회장, 롯대의 신격호 회장 모두 한국 경제사에 복이라고 본다. 한화는 김종희 회장보다 현 김승현 회장의 공성 능력이 사실 더 눈에 띄는, 창업주보다 그 자식의 능력이 더 뛰어난 경우다.
우리나라 정치사에도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다.
우선 난 인간적인 면에선 노무현 전대통령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의 정치는 실패에 가깝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내린 처벌로 인해 한국 정치가 개판이 된 것을 생각하면 노무현 전대통령의 선택이 너무나 아쉽다. 다만 그의 진정성을 나는 매우 존중한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인물을 꼽는다면 난 두 명을 꼽는다. 박정희 전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이다. 이 둘 모두 공성과 수성의 능력이 좋았다. 박정희 전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 모두 기존의 관성을 무너트리고 자신이 올라선 인물들이다. 그렇게 위에 올라선 후 국가의 미래를 그려냈다. 그들이 그린 미래의 틀에서 우리는 성장했고, 지금에 왔다.
문제적 인물인 전두환도 명암이 모두 존재한다.
사족이지만 전두환의 군사정권을 욕하는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많은데, 최소한 윤호중이나 유시민 같이 민간인을 고문 구타했던 인간들 그리고 이것을 방관 혹은 방조한 인간들은 전두환을 욕할 자격이 없다. 본인들이 보인 행동은 전두환의 군사정권의 태도와 완벽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이해하는 것은 때에 따라 필요한 태도가 있고, 이들의 "공성"적 태도는 변화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성을 깨기 위해선 무모함과 집요함이 필요하다. 무모함과 집요함엔 목적이 있다. 목적 이외 다른 것은 불필요 하다. 이들의 선은 모두가 갖는 평등한 선이 아니다. 이들의 가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다. 선과 가치는 도구다. 그리고 이것이 이상을 논하는 진보주의자들이 위선적 태도를 갖게 하는 이유다.
세월호와 이태원 사건엔 없는 눈물까지 쥐어짜지만 무안 항공사고나 천암함 등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인간들. 과거 홍준표가 성완종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조국을 포함한 진보주의 법조인들은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재명은? 조국의 확 바뀌어버린 입장을 보아도 이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알 수 있다. 지금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의 과정을 봐라. 국힘보다 더 역겨운 수준이다. 또 여성의 인권을 말하면서 박근혜와 김건희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리는 위선. 진보나 보수나 이들 모두 똑같은 기득권인 것을 보통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국민들을 이용할 뿐이다.
하나 헛소리 하자면,, 유시민은 과거 노무현재단 계좌를 검찰이 불법 사찰했다고 거짓말/거짓선동을 했었다. 그것도 선거 직전에. 그런데 이런 불법사찰은 민주당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날 일이다. 카카오 대화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이고, 아마 통제하기 쉬운 공무원들의 핸드폰을 다 들여다볼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들의 머리속은 중국과 똑 같은 전체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고, 통제와 억압으로 가득 차 있다.(11/13 확인)
약자를 위하는 척 하지만 진짜 약자는 괴롭히는 진보주의자들. 본인들이 피해자인 척 하지만 사실은 그들도 가해자인 진보주의자들. 본인들이 선을 추구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보수와 전혀 다를게 없는 진보주의자들. 결국 약자와 동행하는 척, 정의로운 척은 다 하지만 거짓과 위선만 존재하는 쓰레기 새끼들.
내가 노무현 전대통령을 존중하는 똑같은 이유로 난 지금의 진보인사들을 쓰레기로 본다. 어느 누구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진정성을 이어간 인간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본인의 과거 발언을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본인 재판과 관련해 현재 돌아가는 모습만 봐도 보통 낯짝이 두꺼운 인간이 아니다. 아마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정말 그럴 줄 알았냐며 속으로 국민들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가 잘하는 것은 분명 있다. 이재명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잠수함 건조를 받아내려 하는 것. 이것은 모든걸 내주고 얻은게 하나 없었던 윤석열과 비교된다. 이재명은 적어도 주고 받는게 있다. 보수는 본인들이 정말 보수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윤석열처럼 모두다 퍼주고 얻는게 없는 무능한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핵잠수함을 받아낼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국면 전환이 필요한 이재명이니 사력을 다해 얻어내려 할 것이다.(14일 언론에 타결 뉴스 보도) 또 핵잠수함의 핵심은 잠수함이 아니라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있다. 이것을 확보하면 핵폭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다만 핵잠수함을 얻어내고 이익의 9할을 미국에 바치는 협상이라면 안하는게 낫다. 미래성장과 핵잠수함을 맞바꾸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핵을 가지고 있는 파키스탄이나 북한을 보면 경제 성장의 중요성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의 미래 성장을 바치기 보단 미래성장을 지키고 다음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어째든 지금까지 나온 한미 협상에 대한 내용은 분명 윤석열보다 낫다.
공성은 기존의 관성을 깨는 것이다. 즉 변화가 필요할 때 혹은 변화의 순간에 공성이 필요하다. 수성은 기존의 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변화보단 안정이고 확장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바로 세종이 즉위했다면 우리가 아는 명군이 나올 수 있었을까? 세종의 성공은 태종의 무자비한 평정을 기초로 한다. 태종이 합리성을 내세워 인내를 했다면 어땠을까? 더 나았을까? 글쎄. 태종의 숙청이 없었다면 세종의 태평성대는 없다. 변화의 전후엔 늘 혼란이 있다. 합리성은 오직 이성적 대화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이성적 대화가 안되고 다름을 배척하는 시대에서 합리적 행동만 고집한다면 아마도 평생을 매우 고되게 보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면 안정을 추구하며 성장/확장을 해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합리성이다. 혼란을 계속 가져간다면 성장/확장은 없다.
즉 세상 일엔 때가 존재하고, 각 때에 따라 그에 맞는 태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일은 시대를 이해하는 일이다. 관성을 깰 필요가 있다면 혹은 관성이 깨지기 시작했다면 공성의 태도를, 관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혹은 관성이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면 수성의 태도를 가져가야 한다.
그럼 지금 이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에서 맘다니가 당선된 것은 세상이 자본주의에 보내는 경고음이다.
자본주의는 지금 위기다.
이 위기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서 기인하고, 인간의 욕망에 끌려다닌 것에 기인한다.
자본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적절하게 끌어다 쓰는 것이다. 결국 공정한 경쟁을 바로 세우고 인간의 욕망을 적절히 제어시키는 것이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폭주하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경제를 위한다며 구조조정조차 하지 못하는 수준이고, 너무 비대해진 금융자본에 끌려다니기 바쁜 모습이다. 이러니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심화된다. 자본을 이용해야지 자본에 휘둘려선 안된다.
난 이제 한국의 초격차는 없다고 말한다. 중국과의 초격차는 몇 년 전에 끝났다. 중국은 명실상부 미국과 버금가는 대국이다. 단순히 경제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 수준도 미국과 견줄만큼 크게 발전한 국가라고 본다. 특히 AI의 발전은 중국의 발전을 가속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국 본인들이 전랑외교를 통해 쌓아올린 부정적 이미지와, 공산당의 비민주적 정치태도가 다른 선진국들에게 비호감을 사면서 소프트 파워는 여전히 떨어진다. 즉 미국에게 시간이 조금 남았다.
미국이 만약 무너진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모함과 집요함이다. 기술에 무모할 정도로 투자해야만 하고, 다소 욕을 먹더라도 이기적인 태도로 국제규칙을 줄타기 해야 한다. 전국민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과거 6.25가 끝난 후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던 그 때로 돌아가야 한다. 일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 반대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합리성과 참을성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미국도 성공하지 못한 공정 경쟁을 세우고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는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인내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은 좌도 우도 아닌 중도가 되어야만 한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다음 경기침체가 언제 오느냐,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과연 세상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정치도 경제도 양극화가 되는 모습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크다.
변화의 바람이 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