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준 의장에 오른 앨런의 첫 FOMC 회의가 어제 열렸다. 발언의 핵심은 그동안 금리정상화의 한계점으로 인식됐던 ‘실업률 6.5%’를 폐지하고 대신 ‘고용시장 상황과 기대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등 광범위한 정보를 면밀히 주시해 금리조정 검토’로 바꾼 것이다. 시장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분위기다. 미국 3대 지수는 이 발표 직후 일제히 하락했다. 실업률 6.5% 기준을 낮출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폐지한 게 금리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영향은 국내증시에도 미치고 있다. 3/20일 10시 현재 KOSPI 지수는 12P 하락한 1925P를 기록 중이다.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인상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미국 증시는 빠지고 덩달아 신흥국 증시도 하락한다. 이게 과연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사안일까? 소위 말하는 ‘출구전략’이 경기 동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과거 사례를 살펴보고 향후 추이를 예상해 보자.
1. 출구전략이란
간단히 말해 그동안 추진했던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를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정책이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이후 본격화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3차례에 걸쳐 실시해 왔다.
[양적완화정책의 진행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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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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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억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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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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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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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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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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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국채 및 MBS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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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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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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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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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국채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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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레이션
트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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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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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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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국채 매도
장기국채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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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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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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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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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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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 3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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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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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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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국채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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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계(2013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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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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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이후는 매월 850억 달러씩 매입해 오던 MBS와 장기국채를 순차적으로 줄여오고 있다. 이번 연준에서 4월부터 추가로 100억 달러를 줄이기로 발표해 이제 월 55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게 됐다. 여전히 양적완화는 진행 중이며 다만, 그 규모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출구전략은 3단계에 걸쳐 점진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1단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채와 MBS의 매입규모를 계속 줄여나가는 것이다. 현재 속도라면 아마도 올해 말 정도면 1단계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2단계는 금리 정상화 단계인데 그동안 연준은 에반스 룰(한계점 기준방식) 즉, 실업률 6.5%, 인플레이션 2% 충족 시까지는 금리인상이 없을 것으로 얘기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앨런의장이 이 실업률 6.5% 기준을 없앤 것이다. 시장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거 같은데 오히려 매우 긍정적 측면으로 봐야 할 듯 싶다. 지난 석달간 미국 실업률은 6.6~6.7%로 목표치 6.5%에 거의 근접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물가는 1%대 이나 지난해 7월 2%를 갔던 적도 있다. 이런 추세라면 실업률은 곧 6.5%를 밑돌게 빤하고 물가역시 목표치였던 2%를 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연준 입장에서는 1단계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2단계 조건이 충족되는 셈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와 실업률 추이]
이런 아이러니를 없애겠다는 게 이번 발표 목적이다. 시장이 반겼으면 반겼지 실망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연준은 1단계 종료 후 약 6개월 후에 금리인상을 한다고 했으니 빨라야 내년 상반기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앨런의장은 그때의 고용상황과 물가, 금융시장을 검토해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과거 그린스펀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다. 시장 흐름을 살피겠다는 점, 미국 경제가 크게 걱정스럽지 않은 이유다. 3단계는 그동안 사들였던 주택담보부 증권을 매각하는 단계다. 시장이 활황세를 보일 때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기가 언제일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출구전략의 과거사례를 한번 보자.
2. 레이건 시기
미국은 지난 81~89년 레이건이 집권하던 시기 낮은 물가와 실업률,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한다. 이때를 ‘레이건 붐’이라 한다. 80년 초반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가 고금리 정책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으며 장기 성장의 기반을 닦아 놓은 게 계기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방화, 민영화, 규제완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사용해 장기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장기 호황이 계속되자 물가상승 압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연준은 금리인상으로 대응했다. 86년 10월 5.85%였던 기준금리를 89년 9월 9%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고금리는 저축대부조합(S&L: Saving and Loan Association)파산 사태를 가져왔다. 차입은 단기(변동금리)로 해 왔는데 대출은 장기(고정금리)로 한 탓이다. 기준금리가 올라가자 역마진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융시스템이 흔들거렸으나 미국 정부는 초기 대응이 매우 미진했다. 이 여파로 당시 3,234개 였던 대부조합이 절반가까이 부도나 없어지고 1,645개만 남는다. 구제금융으로 투입된 자금이 약 5천억 달러, 이로 인해 90~91년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그 외 걸프전 발발로 유가가 급등(90년7월: 15달러 → 9월: 35달러)한 것도 미국 경제를 옥죄는데 일조했다.
[두바이 유가추이]
90년 4분기(-3.9%)와 91년 1분기(-1.9%)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며 Recession에 빠지자 연준은 그때서야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다. 금리인하 결정을 한 것이다. 9%였던 기준금리를 92년 2.9%까지 떨어뜨린다. 이후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자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시행한다. 95년 6월 까지 금리를 6%로 올린다.
[81~95년 성장률과 금리추이]
90년 초반의 경기침체와 걸프전 참가로 늘어난 재정적자는 아버지 부시의 연임을 막고 당시 정치 신인에 불과했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GDP대비 연방정부 부채추이]
3 닷컴 시기
90년대 중후반 IT열풍이 불면서 소위 닷컴 주식들이 폭등하는 장세가 연출된다. 이들 주식이 많이 상장되어 있던 나스닥 지수는 91년 1월 370P에서 00년 3월 5,130P 까지 10년 동안 약 14배 상승하는 폭등장세를 연출한다.
[’91~’00년 나스닥 지수 추이]
사실 나스닥 시장이 본격적으로 폭등하기 전 미국은 경기가 호황국면이었기 때문에 물가상승 압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그 압력은 커졌으나 대외적 변수가 금리인상을 할 시기를 가로 막고 말았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98년 러시아 디폴트 선언과 LTCM의 파산 등이 발생하며 일시적이지만 금융시장을 흔들어 댔던 것이다. 물가상승 압력이 쌓여가던 시기에 오히려 물가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사건들 때문이다.
[96~05년 성장률과 금리추이]
이 금리인하 효과가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산가격 급등세를 불러왔고 뒤이어 99년부터 금리인상 처방(4%중반 → 6% 중반)을 내렸으나 이것은 나스닥 시장 붕괴로 이어졌다. 시가총액의 80%가 사라졌다. 신용파괴 현상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미국 경제는 2000년 2분기 이후 급락하기 시작한다.
[나스닥 붕괴시 미국 성장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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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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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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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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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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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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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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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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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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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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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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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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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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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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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3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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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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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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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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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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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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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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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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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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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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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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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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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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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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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기비 연률
이때 사용하는 방법은? 그렇다. 금리인하를 통한 양적완화 정책이다. 미국은 6% 중반 대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1%까지 떨어뜨린다. 미국 경제는 2002년 하반기부터 안정세를 보이며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인 출구전략 즉, 금리인상은 2004년 중반이 되어서야 이뤄진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이 1%의 저금리를 오래 끌어 2004년 이후 자산버블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구전략이 늦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1년 12월 엔론이 그 뒤를 이어 2002년 7월에는 월드컴이 각각 6억 달러, 38억 달러의 회계부정으로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엔론은 시가총액 800억 달러, 자산규모 630억 달러로 매출액 기준 7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의 회사였다. 엔론 파산은 당시 미국기업 역사상 최대 파산사건으로 기록됐다. 그 뒤에 터진 월드컴은 시가총액 1,600억 달러, 자산규모 1,039억 달러로 훨씬 컸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금리를 올리기는커녕 더 내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린스펀이 아니었더라면 2008년 사태가 아마 이때 터졌을 지도 모른다.
04년 이후 경기가 살아나면서 본격적인 출구전략이 실시된다.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했지만 경기는 계속 호황국면을 이어갔다. 그 후로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07년 까지 초 호황세, 계속적인 금리인상, 그로인해 서브프라임 사태 순이다.
4. 일본 사례
일본경제는 80년대 초호황국면을 연출한다. 니케이지수는 6,000대에서 39,000까지 솟아올랐고 부동산 가격은 약 9배가 오른다. GDP대비 부동산 가치가 당시 미국의 4배에 이르렀다.
[일본의 주가/부동산 가격 추이]
90년대 들어서자 자산시장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 경기후퇴가 진행되자 일본 정부는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한다. 91년 7월 6%였던 금리를 95년 9월 0.5%까지 떨어뜨린 것이다. 이런 정책시행으로 일본경제는 95, 96년 일시적으로 회복세를 띈다.
[90년 일본 경제성장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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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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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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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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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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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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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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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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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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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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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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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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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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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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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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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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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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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0.1
|
96년 성장률이 2.7%를 기록하자 일본경제가 완전히 살아난 것으로 판단하고 출구전략을 실시한다. 재정건전화 및 21세기형 금융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일본판 빅뱅구상’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런 조치는 회복되던 소비를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은행이 부동산 회사와 건설사에 대한 지원을 중단토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막 살아나려던 경기 불씨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자국내 경기부진이 심화되자 일본은 동아시아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5. 미국 출구전략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
크게 실물적 측면과 금융적 측면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실물적 측면에 미치는 영향은 출구전략이 경기회복 신호탄으로 작용해 미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에 대한 수출증대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엔저 현상 지속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출은 이미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율만 더 떨어진다면 국내경기 호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각 국 수요가 회복되면서 원자재 등 수요는 늘어나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
금융적 측면에서는 국제금융시장 안정으로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시장으로 자금유입이 예상된다. 신흥국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국내시장 역시 선진시장에 비해서는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어 자본유입 증가가 예상되며 이로 인한 원화가치 상승과 자산시장 상승이 기대된다.
6. 결론
미국의 출구전략은 심리적으로는 국내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으나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세계 최대 경제규모인 미국의 본격적인 회복으로 받아들여져 실물 및 금융시장 모두에서 한국에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이로인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여 달러유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는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