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노트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란의 어려움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은 예상됐다. 두 국가는 미국에게, 특히 트럼프에게 큰 배신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란은 과하지욕을 알고 지금은 버텨야만 한다. 자신들의 수족이 모두 잘려나간 지금 이들에게 선택지가 없다. 미래세대에게 지금의 치욕은 다른 큰 동기가 될 것이다. AI가 무기화 되는 지금 상황에서 뒤쳐진 국가들이 어떻게 앞선 국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상상하긴 어렵지만 세상만사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 이치라고 본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을 위해서 트럼프가 꺼내고 있는 조건들은 우크라이나에겐 너무나 가혹한 것들이고, 지금 누구도 1700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지원금이 5000억 달러로 불어났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의 직접 당사국 중 하나가 미국인걸 감안하면 결국 다시 한번 냉혹한 국제관계를 깨닫게 된다.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이 선택한 트럼프는 중국과 같은 수준으로 보이고,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면서 한미군사협정보다 자강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꼭 우리나라도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트럼프의 행보 중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것 몇 개가 있다.
하나는 정부효율화. 미국의 국가부채가 높은 것이 문제라고, 반면 민간은 부채비율이 낮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를 통해 경기부양을 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트럼프는 한발 더 나아가 정부지출을 줄이는 선택을 했다. 꽤나 저항이 크고 꽤나 부담이 될 일이지만 머스크를 앞세워 정부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트럼프의 이런 선택은 뜻밖이었고 동시에 걱정과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세상 어디에도 효율적인 정부는 없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정부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종국엔 큰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것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큰 개혁엔 큰 저항이 있다. 이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관건이다.
트럼프의 행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적극적으로 친러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선택은 유럽의 분열을 가속화 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깊게 밀착된 국가들과 러시아에 반감이 큰 국가들 사이에서 균열이 생길 수 있고, 또 머스크의 극우정당 지지와 같은 행동들이 각국의 극우세력을 키워 내분도 발생할 수 있다. 또 극우의 득세는 언제나 마찰을 가져온다. 사실 머스크가 아니여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생각하는 집단은 다른 집단과 마찰을 갖기 쉽다. 지금 전세계에서 보여지는 극우의 득세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파이는 커지지 않고 정체된지 오래다.
미국의 친러 행보가 중러간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하지만 푸틴은 모디와 다르지 않다. 푸틴 역시 실리를 중시하는 인물로 중러간 밀착은 쉽게 떨어지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러간 밀착이 끈끈한 것도 아니다. 중국은 러시아를 돈벌이 국가로 그리고 미국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국가로 인식할 뿐이다. 절대 끈끈한 동맹은 아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서 푸틴 역시 중국의 필요성과 중국의 간사함을 더 확실히 인식했을 것이다. 트럼프와 푸틴의 관계도 그 정도로 끝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미국의 이 한수는 가까운 내 편만 잃는 악수가 된다. 세계는 그렇게 조금더 단절된 모습을 띄게 된다.
또 유럽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유럽은 중국의 손을 잡을 수 있다. 이것은 중국에게 살 길을 열어주는 꼴이다. 결국 중국과의 패권전쟁 중인 미국에겐 절대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 미국이 어떻게 유럽을 설득할 수 있을지 지금은 예상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행보 중 참 골때리는 것은 캐나다를 향한 노골적인 욕심이다. 멕시코를 향한 무력행사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캐나다에게 보이는 제국주의적 발상은 계속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된다. 미국이 캐나다를 자국으로 편입할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캐나다와의 경제적 협력과 외교를 통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캐나다를 흡수하겠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무언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일종의 협상 방법이라면 그 방법이 너무 거칠다. 장기적으로 미국에서 절대 좋지 않다. 만일 이것이 진심이라면 미국은 끝물에 들어섰다고 봐야한다. 이정도 판단도 못하는 수준이라면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어째든 러시아와의 밀착과 그린란드 그리고 캐나다를 향한 노골적 욕심 모두가 가르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북극과 천연자원. 특히 우리는 앞으로 이 북극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생각보다 세상이 더 어렵게 흘러가고 있다.
바이든의 미국은 동맹을 중심으로 세계질서 개편이라면 트럼프의 미국은 오로지 실리를 추구하는 제국주의로의 회귀에 가깝다. 바이든의 미국은 경제 블록화 혹은 동맹 블록화라면, 트럼프의 미국은 그의 정책과 행동을 볼 때 블록화가 아니라 각자도생의 모습이 보인다. 즉 세계화에서 블록화로 그리고 이젠 각자도생의 길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점점 그 파이가 줄어드는 형태다.
파이가 줄어들면 세상은 더 팍팍해지고, 더 팍팍해지는 만큼 마찰과 반목도 심해진다. 시장경제체제의 한계로 보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지금까지 파이의 확장을 통해 번영을 이뤄왔다. 하지만 이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으면 나의 성장을 위해 다른 이의 파이를 빼앗아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한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엄청난 도전을 맞이할 것으로 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 공산주의는 경제시스템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정치 시스템이다. 의외로 국민들은 정치시스템에 큰 관심이 없다. 프랑스 혁명만 보아도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니 민중들이 거리로 나왔다. 먹고 사는 문제는 정치시스템의 관심을 넘어선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사가 특별한 것이다.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면 정치시스템이 유지되고, 먹고 사는데 문제가 크다면 정치시스템이 바뀐다. 몇 년마다 선거라는 이벤트가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더 쉽게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다소 어둡다. 세계화의 시대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국가들이 반세계화의 시대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확률이 높다. 지금부터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실리적인 관점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아예 반대로 큰 가치를 내걸고 그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엔 큰 대의명제 혹은 가치를 주장할 깜냥이 되는 인물이 없다. 실리를 취할 인간도 전혀 안보인다.
무얼 해도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무얼 해도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문제다. 이런 수준이니 민주당의 광견 같은 정치와 이재명의 무한 방탄이 계속되고, 또 또라이 윤석열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인 비상계엄을 해버렸다. 그리고 국힘은 이런 윤석열을 정당화한다. 우리나라에 산적한 문제들은 이들에겐 뒷전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말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AI의 발전은 과거의 어떤 시대보다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변화시킬 것이다. 하수는 변화를 부정하고 변화에 화를 내는 사람이고, 중수는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고, 고수는 변화를 이용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사람은 변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은 하수일까? 중수일까? 아니면 고수일까? 정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